한스 메믈링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방패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총알받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선두에서 혹은 경계에서 내놓고 공격을 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자가 주체적인 힘을 가지고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 조직과 부하, 동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이라면, 후자는 조직이나 동료들에 의해 그렇게 하게끔 강제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내몰린것입니다. 전자는 외부와 겨뤄 능히 이길 힘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는 소모품처럼 이용된 뒤 곧장 버려지곤 합니다. 그 관념이야 어떻든 방패막이나 총알받이 라는 말에는 보호받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가 잠재져 있습니다. 누군가 날 대신해 매도 좀 맞아주고 비난도 좀 받아주었으면 한느 바람의 소산일 것입니다.
기독교의 경우 창시자인 예수 자신이 인간을 향한 신의 벌을 대신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됐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으로도 대단히 큰 은총이겠지만, 사람들의 욕심이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은 성인들을 배출해냈는데, 이는 예수처럼 이들의 신의 노여움이나 악마의 간계로부터 매일매시 인간을 변호하거나 보호할 임무를 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곧 더 많은 방패막이가 필요햇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인들 가운데 방패막이로서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 세바스티아누스입니다. 성세바스티아누스는 흔히 벌거벗은 채 온몸에 화살이 박힌 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성인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3세기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재의 근위병 장교였습니다. 은밀히 기독교를 믿고 있었는데, 신아이 발각된 동료 두사람이 처형당하게 되자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가 그 역시 죽음을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화살을 집중적으로 맞았음에도 기적적으로 주요 신체 부위에 꽂힌 화살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버려진 그를 이레네라는 여인이 잘 간호해 살려내자 그는 다시 황제 앞으로 나가 더욱 뜨거워진 자신의 신앙을 천명했습니다. 이에 황제는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했습니다. 화살을 맞고도 살아난 성인. 바로 이 이미지에서 사람들은 그를 방폐와 같은 성인으로 생각했습니다. 특시 중세에는 사람들이 페스트 등 무서운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시절인데 이런 전염병은 신이 쏜 보이지 않는 화살 때문이라는 옛 이교 신앙의 관념이 병마가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새롭게 되살아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 같은 방패막이 성자의 존재가 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기에 그를 경모하는 이들 역시 자신의 전염병의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4세기부터 시작된 성 세바스티아누스 숭배 의식은 14세기 이후 유럽 민중에게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그것은 이 무렵 특히 페스트가 기승을 부렸다는 사실과 더불어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그를 유독 즐겨 묘사해 어디서든 이 성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시 화가들에게 남자 누드를 그릴 수 잇는 흔치 않은 기회를 준 이 성자는,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배운 멋진 인체표현의 주요 실험 무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헨드릭 테르브뤼헨의 세바스티아누스를 돌보는 이레네와 하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로써 버려진 사형수와 그를 은밀히 구하는 두명의 여인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입니다. 노을이 지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구원의 사자로 온 두여인. 이레네의 얼굴이 밝게 빛나는 반면 세바스티아누스의 얼굴이 어둡게 표현된 것이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청년의 몸에 박힌 화살을 조심스럽게 뽑아내고 있는 이레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병들고 아플 때에 정성스럽게 돌보아주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마리아가 예수의 주검을 끌어안고 애통해 하는 피에타의 정서 또한 진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고난을 당한 자녀를 위해 울어주는 어머니의 사랑, 그 모성애가 이레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방패막이에 대한 인간의 본증적인 욕구 혹은 기대는 이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자신이 무서운 전염병의 방패막이인 세바스티아누스조차 이같은 섬세한 여성의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이 끝내 성모 숭배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것도 바로 보호자의 어머니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방패막이는 아마도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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