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산데르스 반 헤메센의 바니타스
한 천사가 거울을 들고 있습니다. 화려한 프레임과 장식적인 두루마리가 거울의 권위를 은근히 높여줍니다. 그 거울에는 지금 해골 하나가 비치고 있습니다. 누구의 해골일까요? 이 그림의 오른편에는 분명 또 다른 그림이 하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 이 그림의 거울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을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울의 해골은 옆 그림의 사람이 비친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 역시 살점 하나 없는 해골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 그림의 주체로 볼 때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도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이 그림의 주체가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얀 산데르스 반 헤메센의 그린 이그림의 제목은 바니타스입니다. 바니타스란 라틴어로 허영, 덧없음, 무상함, 허무 등을 뜻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덧없고 허무하다는 것일까요? 바로 인생이 그렇게 덧없고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젋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도 언젠간 죽기 마련입니다. 세상 만사 유한하며, 인생의 즐거움도 유한한 법입니다. 이 그림의 거울을 바라보는 사람 또한 젋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 속절없다고 이 그림의 해골은 말합니다. 누구든 진실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 스스로가 하나의 해골에 불과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프레임에는 죽음이 만물의 강탈자 라고 씌어 있고 두루마리에는 권력과 아름다움, 부의 종말이 선포돼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천사의 날개를 보면 천사의 날개가 일반적인 새의 날개가 아닌 나비의 날개를 하고 있습니다. 나비는 애벌레에서 벤데기가 됐다가 성충으로 변합니다. 애벌레의 삶이 이 지상의 삶을 의미한다면, 번데기는 죽음, 그리고나비는 천구에서의 영원한 삶, 즉 부활을 의미합니다. 신의 은총을 입은 자는 이렇듯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삶을 얻게 된다는 것, 그림은 관자에게 그 진리를 깨달아 세상의 헛된 것을 구하지 말고 영생을 구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써 생명을 말하는 그림인 것입니다.
하르멘 스텐비크의 정물:바니타스의 알레고리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의 대가가 그린이 장르의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그림을 보면 강력한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오고, 그 사선과 반대의 대각선으로 정물들이 층을 이뤄 묘한 긴장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정물들 가운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해골입니다. 이 바니타스 주제의 근원을 이루는 소품 주변으로 책과 악기, 일본도와 조개껍질, 시계와 불꺼진 램프, 도기 그릇 따위가 널려 있습니다. 책은 배움과 인간 지식의 유한함, 악기는 세상의 즐거움이 갖는 허무함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일본도와 아름다운 조개껍질은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매우 희귀한 물건들로서, 그것들은 획득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재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곧 부의 상징들입니다. 그러나 그 부유함이라는 것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불 꺼진 램프와 시계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습니다. 도기 그릇은 깨어지기 쉽습니다. 인생이란 이런 도기 그릇에 물이나 소중한 물건을 넣어 나르는 것과 더를 바 없습니다. 그만큼 사려 깊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입니다.
이런 그림을 벽에 걸어 놓고 감상하던 당시 네델런드 시민들은 부담없고 일상적인 표현 속에서 신의 뜻을 읽고 스스로를 일깨우며 근면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편으로 예술과 세속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생활을 추구한 그들의 태도가 절묘한 균형으로 탄생시킨 것은 바니타스 정물화였습니다. 물론 바니타스를 나타내는 소품들 가운데는 앞서 언급한것들 외에 다른 다양한 사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의 조합도 임의적인 것들 외에 다른 다양한 사물들도 있습니다. 해골이 꼭 등장해야 하는 것도아니었고, 당시 인기 있던 이 주제의 소품들을 좀더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래시계와 촛불. 이것들의 상징적인 의미는 시계와 같습니다. 거꾸로 뒤집힌 주전자나 컵은 그 비어 있음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이나 허무함을 나타내었습니다. 왕관이나 홀, 보석, 지갑 따위는 죽음이 가져갈 세속의 권력이나 부를 의미했으며, 갑옷이나 투구, 창 등 무구류는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음을 상징하는 사물이었습니다. 아름답고 화사한 꽃은 그 짧은 피어남으로 역시 인생의 짧음을, 그리고 그흉한 시들어감으로 죽은 뒤 육체의 부패를 의미하는 구실을 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의미가 좀더 선명한 소품들로는 잔이나 주전자에 담긴 포도주와 빵이 있는데, 이는 성만찬을 의미하는 것이며 담쟁이덩굴은 언제나 푸른 그 빛으로 구원받은 이의 영생을 나타냈습니다. 영상의 상징은 또 그릇에 불사조나 예수의 십자가상, 혹은 로자리오 묵주를 그려 넣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개신교화된 지역이 가톨릭의 성모 신앙과 성인 숭배를 배척하면서도 그 미술적 전통의 일부는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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